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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핵심역량, 중심의 변화 일궈내야…
과거 사례를 통해 알아본 위기 대응 전략
최근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와 셰일가스의 확대적용 등 위기 요소가 산재한 가운데, 기업들은 저마다 돌파구가 될 새로운 사업을 적극 모색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본문에서는 과거 위기를 극복해 온 기업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대응 방안을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1. 주요 기업들 사례 분석
DuPont Product 리더십에 기반한 지속적인 변화 추구
DuPont하면 우선 나일론이 떠오른다. 당시 나일론은 스타킹 등 새로운 제품이 탄생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1938년 개발된 테프론, 1960년에 개발된 Delrin 등 DuPont의 제품들은 지금도 자동차, 전자,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그러나 석유화학 산업 붐이 한창일 때 DuPont은 사업의 전환을 시도한다. 1956년에 기초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생산 확대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석유 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으로 시장에 적극 진입하면서 DuPont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DuPont은 크게 두 가지의 사업 전략을 추진하기로 한다. 적극적인 해외 시장 확대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과, 회사의 다양한 역량을 조합하고 최적화해서 제품 개발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DuPont은 Conoco를 인수하는 등 원료 확보를 위한 활동과 동시에, 회사 보유 역량에 기반한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중장기 리스트럭처링 전략을 펼친다. 1984년에는 Conoco 내 사업 중 DuPont과 관련이 없는 비닐 관련 제품 생산 설비를 비롯해 패키징, 우레탄 고무 사업 등도 매각했다. 반면, 지금까지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던 섬유 관련 사업 및 페인트 사업은 지속적인 인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DuPont의 이러한 Product 리더십 전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자체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바이오 기술 회사인 Pioneer의 지분을 인수했으며, Optimum Quality Grains라는 J/V형태의 연구 개발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Dow Chemical Process 리더십 역량에 기반한 점진적인 다운스트림 사업 확대
DuPont이 Product 리더십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 Dow는 Process 리더십에 기반한 원가 경쟁력을 추구했다.
Dow의 석유화학 사업은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석유개발과정에서 쓰이는 화학제품을 대량 생산했고 1950년대에는 올레핀, 방향족, 그리고 기타 기초 석유화학 제품 및 플라스틱 생산에 주력한다. 특히 그동안 Dow는 축적해온 염소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PVC를 대량 생산했으며 플라스틱 백이나 클리너 등 실제 응용 제품까지 직접 생산하면서 제품의 사용 분야를 더욱 확대시켜 나갔다.
한편 Dow는 오일과 가스를 대규모로 확보하고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등 원가 경쟁력을 위한 수직 계열화에도 집중했다. 이러한 확장은 내수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 시장에 직접 투자나 J/V를 통해 적극 진출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한 석유화학 사업의 위기가 오고 회사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Dow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먼저 기초 화학 및 플라스틱 분야에서의 강점을 살리면서 비교적 부가가치 높은 다운스트림 제품(플라스틱 생활용품 등), 그리고 농화학 같은 스페셜티 화학제품의 판매 비중을 50%로 늘리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며 또한 이를 위해 각 국가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조직 형태를 각 지역별 조직을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초 화학 및 범용 플라스틱 사업의 비중을 단순히 축소만 한 것은 아니다. 1990년 중반에도 경쟁력을 가진 기초 화학 및 범용 플라스틱 설비를 신증설했고 기존 범용 제품 생산 공정의 기술 개선을 위한 연구 개발도 지속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1993년 메탈로센 촉매를 이용한 폴리에틸렌 생산 신공정을 개발한 경우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 기업과 함께 중국에 석탄을 원료로 한 대규모 범용 석유화학 제품 생산 설비에 투자했으며 브라질에선 식물자원을 원료로 사용한 폴리에틸렌 생산 설비에 투자하는 등 저가 원료 기반의 범용 제품 생산 설비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Dow의 경우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에 변화를 주면서 원가경쟁력을 기반으로 부가가치가 높거나 다운스트림 쪽 제품에 집중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또한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온 결과, 현재 석유화학 산업을 이끌어가는 Top Tier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ICI 관료적인 기업 문화로 인해 사업 구조 변화에 소극적
ICI는 영국 기업으로서 독일의 IG Farben에 대응하기 위해 1926년 영국의 여러 화학 기업들이 합쳐져서 만든 기업이다. 폴리에틸렌, PVC, 폴리프로필렌 및 폴리에스터 등의 사업 규모를 꾸준히 키워온 ICI는 예전부터 진행해 왔던 염소, 가성소다 사업들도 함께 확대하며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이후 1970년대 말 위기로 큰 폭의 수익하락이 시작됐다. 당시 수익 하락폭은 경쟁기업보다도 컸는데 이는 너무 많은 종류의 제품들을 생산하는데다 각 제품의 생산 규모도 크지 않아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ICI가 석유화학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대영 제국이라는 큰 시장을 목표로 카르텔 형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조직문화가 다분히 관료적이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당시 언론에 의하면 ICI 내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오래된 부서가 전체 회사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하였고 이로 인해 새로운 부서를 만들거나 부서들 간 합병 등의 결정이 쉽지 않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ICI는 1980년대에 대부분의 석유화학 사업들을 대폭 정리하게 된다. 이후 Unilever의 스페셜티 사업을 인수하면서 스페셜티 회사로의 탈바꿈을 시도했지만 최근 Akzo Nobel이 ICI를 인수하면서 ICI는 역사 속 기업으로 사라졌다.
Union Carbide 핵심 역량과 무관한 사업으로의 사업 구조 전환 시도
1920년 Union Carbide는 Carbide and Carbon Chemical이라는 자회사를 만들면서 다양한 석유화학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섬유와 고기능 플라스틱 분야에서는 DuPont에 처졌으며, 기초 석유화학과 폴리머 분야에서는 Dow의 대규모 투자에 밀려 1위의 시장 지위를 상실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Union Carbide는 다양한 사업 분야로의 확장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회사가 보유한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보다는 당시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사업 위주로 인수가 이뤄졌다. 매트리스 회사를 인수하는가 하면 레이저 시스템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Union Carbide는 새로 인수한 사업들이 스타 사업이 될 것으로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에 Union Carbide가 새로운 사업들을 개척한 방식 또한 다른 기업과 달랐다. DuPont이 벤처 투자 형태로 손실을 최소화했던 반면 Union Carbide는 기존 기업들을 인수하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했다. 벤처 투자는 비록 성공적이지 못했어도 손실이 크지 않았지만 Union Carbide는 기업 인수의 실패가 큰 손실로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 석유화학 사업의 위기가 시작되자 회사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시 경쟁력 있는 사업 분야 중심으로 사업 범위를 제한했다. DuPont과 경쟁하였던 섬유사업을 철수하였고 Dow가 독식하고 있던 기초 석유화학과 일부 플라스틱 분야도 사업규모를 줄였다. 동시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업들 즉 산업용 가스, 농화학, 합금 등 사업을 강화했으며 당시 폴리에틸렌의 새로운 생산 공정을 개발하면서 라이센스를 통해 사업 규모를 늘려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 구조 전환 노력은 1984년 인도의 보팔 사고를 맞게 되면서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회사는 경쟁사였던 Dow에게 넘어갔다.
2. 시사점
지난 수십년간의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과 위기 가운데, DuPont과 Dow 등의 성공과 다른 기업들의 실패가 던져주는 시사점은 다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핵심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사업 전환은 외부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여러 기업들이 핵심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사업 구조 전환을 추진하면서 결과적으로 석유화학 사업을 포기하거나 정리한 경우가 많다. 사업 전환에 성공했다는 DuPont이나 Dow도 핵심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제약 사업을 고부가 사업이라는 이유로 적극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둘째, 사업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 기업들의 경우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석유화학 사업은 다른 사업과 달리 상당히 긴 성장 곡선을 보인다. 1930~40년대에 개발된 제품이 아직까지 상당량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장해 왔던 부서들의 입김이 세지고 또한 기업 문화도 관료적으로 변하기 쉽다. ICI의 경우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었던 대영 제국을 대상으로 거의 독점하다시피 사업을 하다 보니, 크고 오래된 사업부서가 자연스레 기업 내에서 발언권이 컸다. 이런 분위기는 획기적인 생각이나 변화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ICI는 이러한 정체된 분위기를 바꾸지 못해 결국 산업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화를 적극 실천한 기업일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았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의 적극 투자 및 진출은 특정한 지역에만 의존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우도 일본 내 수요 산업의 원료 공급이 우선이라는 석유화학 산업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한국이나 대만 기업들이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우 초기단계에서는 정부의 협조 하에 경쟁력 있는 대규모 산업 단지를 세우고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 최근 저가 원료에 기반한 설비들이 늘어나고 중국 경기가 예전 같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들은 실적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편에서는 현재의 상황도 조금만 기다리면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 상 저점에서 다시 상승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국내 기업들도 어려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석유화학 경기는 다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이 다시 상승한다고 해도 국내 기업들이 얼마나 개선될 것인가는 하는 점은 여전히 문제이다. 단순히 운이 좋기만 기다리는 경영 방식으로는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될 수 없다.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Follower 전략은 유효성을 다하고 있고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비상을 계획하는 지금 우리 석유화학 산업의 위상과도 맞지 않다.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성급한 변화는 오히려 사업을 망칠 수 있다. 핵심 역량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변화를 추진할 것인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어떤 속도로 변화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각 기업이 처한 상황과 보유 핵심 역량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만약 충분한 고심 끝에 전략 방향이 결정된다면 기존 사업의 입김, 관료적인 기업 문화 등을 극복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해야만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자료 :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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